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IHFB)는 2012년, 파리가 날리던 종로구 연지동의 한 옥탑방에서 시작됐습니다. ‘날파리가 싫다‘는 장난스럽고도 솔직한 뜻을 담아 이름을 지은 10여년 전 창업자들은, 500명이 넘는 팀원과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상상이나 했을까요?
수많은 피봇팅과 서비스의 발전에 발 맞춰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라는 이름의 의미도 변화했습니다. 이름 짓던 당시에는 옥탑방을 휘젓고 다니는 벌레였던 Bug가, 데이터 솔루션을 개발하던 몇 년 뒤에는 개발 과정에서의 ‘버그’를 의미하게 됐고요. 밀당영어와 밀당수학의 론칭, 그리고 밀당PT로 거듭난 이후부터는 교육 격차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버그’로 비유해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두세 문단으로 정리했지만 그동안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버그’의 의미가 이렇게나 변화하는 동안에도 CI는 그대로였습니다. 기업의 방향성과 가치가 분명해지고 뾰족하게 좁혀질수록 이를 대변하고 담을 수 있도록 바뀌어 왔어야 하는데 말이죠.
더군다나 지난 2022년은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에게 격동의 해였거든요. 밀당PT가 TV 광고를 기반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고, 그 힘으로 채용 또한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1년이었어요.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장 입고 섀도 복싱하는 이병헌 님, 다들 한 번쯤은 보셨죠?) 격동의 해를 지나면서 CI의 리뉴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10여년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CI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본질적 질문’이 있어야 좋은 CI를 만들 수 있다
성장 가도를 빠르게 달리는 스타트업답게,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했는데요. 이를 위해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깊게,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목표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고들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대표님을 비롯한 내부 구성원분들께 이런 질문을 해 봤는데요.
1.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방향성과 가치관
2.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타깃은 누구인지
3.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세워야 하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4. 기존 서비스(밀당PT)를 어떻게 확장하고 운영할 것인지
얼핏 보면 사업 전략을 구상하기 위한 질문이나 마케팅을 위한 질문 같기도 하죠? 회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CI를 리뉴얼하는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관한 고민이 담겨있지 않은 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본질에 관한 질문’이어야 했습니다. 튼튼한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면서 기초를 다져 나갔어요.
BI와 CI를 다른 방향으로 제작한 이유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는 현재 ‘밀당PT’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명보다는 브랜드가 더 잘 알려진 상황이다보니 리뉴얼 전에 해결해야 할 큰 고민이 있었는데요. 먼저 리뉴얼되고 TV 광고에도 많이 노출 되었던 밀당PT BI의 시각적 요소를 CI 제작 과정에서도 활용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과정에서 ‘우리 회사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했습니다. 밀당PT라는 서비스 주요 타깃은 소비자인 학부모와 중고등학생이지만,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라는 ‘회사’의 타깃은 투자자나 내부 구성원,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잠재적 구성원이겠죠.
정리하자면 두 로고의 목적이 같지 않다는 건데요. 타깃에 따라 디자인 방향은 당연하게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밀당PT의 BI를 리뉴얼할 때는 타깃과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① 교육 불평등 해소 ② 양질의 콘텐츠 제공 ③ 과외를 넘는 신개념 온택트 과외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기초에 두고 진행했는데요.
이번 CI 리뉴얼을 위해서는 서비스를 포함한 회사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아래와 같은 키워드를 도출해냈습니다.
1. 테크니컬(AI 기술력 보유)
2. 신뢰감(교육 기업)
3. 소통의 즐거움(사내문화)
이렇듯 ‘누구’에게 보여질지, 또 ‘무엇’을 담을지가 다르기에 CI와 BI의 디자인 방향성을 달리하게 된 겁니다. 이외에도 ‘확장성’과 ‘포괄성’이라는 고려 사항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밀당PT가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주된 서비스지만, 디지털 교과서 사업에 진출하며 ‘스쿨PT’를 론칭했고, 글로벌 진출 등 더 많은 확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CI와 BI에 연결성을 만드는 것이 멀리 볼 때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질 높은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우리의 미션과 비즈니스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더 많은 가치와 사용자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덴티티 개념도] CI는 BI를 포괄합니다.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길고 긴 이름을 그대로 둔 까닭
우리 사명은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무려 11글자로 되어 있죠. 소속을 말하거나, 외부와 소통이 필요할 때 길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름도 간결하게 바꾸면 편했을 텐데... 왜 이렇게나 긴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갔을까요?
브랜딩 과정에서 공식처럼 살피는 아이덴티티 수명 주기에 대입해 보면, 우리 회사와 서비스는 아직 한참 성장하고 있는 ‘성장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어느 때보다 정확히 인지시켜야 하는 때인 셈입니다. 따라서 편의성을 고려하여 IHFB로 줄이기보다, 풀네임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가 좀 더 성장하여 인지도가 쌓이고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를 IHFB로, 혹은 심볼화한 형태로 좀 더 간소화한 시각적 리뉴얼을 해 볼 수도 있겠네요.
시기와 인지도에 따라 점차 간결하게, 심볼화하는 Identity 예시
그래서 어떻게 만들었냐고요?
테크니컬, 신뢰감, 소통의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안을 뽑아내기 위해, 각 키워드에 중점을 둔 시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수많은 시안 제작에 거쳐 최종 결정된 CI는 ‘교육 기업의 신뢰감’을 뚜렷이 보여줄 수 있는 방향에 중점을 두어 만든 시안이었습니다.
대표 키워드 세 가지가 도출된 배경
3가지 방향 중 Technology(기술력)와 Trustworthy(신뢰감)에 좀 더 무게를 둔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방향 1)
방향 2)
방향 3)
그래서 어떻게 바뀌었냐고요?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CI 디자인 자세히 보기
기존 CI보다 무거운 서체를 사용하여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강조했고요. 정방형보다는 세로가 더 긴 비율로 세련됨을 표현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끝나는 획의 끝선과 꺾임으로 정제되고 분명한 ‘테크니컬’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CI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죠? 세 가지 색의 빗금이 보이실 텐데요. 이 빗금들에는 ‘금지’와 ‘상승 곡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습니다. 먼저는 부정적인 것들을 지양하고 혁신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성을, 두 번째로는 우상향하며 발전하는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가능성을 표현했습니다. CI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반짝이는 형태는 ‘마침표’입니다. 목표하는 바가 긍정적으로 해결된 상태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답니다.
좀 더 정리해 볼게요. 이전 CI에는 ‘나는 날아다니는 벌레가 싫어’라는 말에서 나온 창업 스토리에 집중한 모습이 강했다면, 이제는 회사가 성장하면서 품어야 하는 더 많은 가치가 생겨났고, 그 가치를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지켜나가야 할 시기인데요. 그러니 이번 디자인 리뉴얼은 그 가치들이 더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집중한 작업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CI는 삼단으로 쌓이는 [Version 1] Vertical 조합과 수평 구조로 길게 사용이 가능한 [Version 2]의 Horizontal 조합, 그리고 심볼 사용이 가능한데요. 첫 번째 버전을 메인으로 잡았습니다. 아래 보시면 심볼 마크가 들어가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IHFB로 줄인 구조를 로고에서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심볼마크의 독단 사용은 사명을 전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CI 리뉴얼 과정을 이렇게 소개해드렸는데요. 이제는 제대로 적용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의 CI와 밀당PT의 BI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쓰이겠죠. 지금까지는 사원증, 후드티, 명함 등에 CI가 적용되었고, 서비스나 광고 안에서는 BI가 적용돼 왔어요.
CI, BI를 운영하는 데 있어 앞으로 고민이 필요한 부분
이처럼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영역도 있고, 채용 브랜딩과 같이 둘 중 어떤 쪽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되는 영역도 있습니다. 앞으로 리뉴얼된 CI와 BI에서 파생된 결과물들이 각자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면서, 우리 아이덴티티가 단단해지길 바라 봅니다. 급성장해 나가는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와 밀당PT가 긍정적인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버그를 싫어하는(지양하고 발전하는)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라는 이름처럼요!
리뉴얼한 CI, 이렇게 쓰입니다
그럼, 바뀐 CI가 적용된 다양한 모습을 만나볼까요? 웰컴키트나 다이어리처럼 아래의 예시 외에도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요. 제작이 가능한 시기가 얼른 오길 바랍니다. 이 밖에도 다른 적용 예시들이 있지만, 작업 중인 예시들은 아직 보여드리기는 어렵네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적용될지 기대하며 기다려 주세요!
[CI 운영 모습] 사원증
[CI 운영 모습] 사내 공간 사이니지
[CI 운영 모습] 후드티 앞면(좌측), 뒷면(우측)
[CI 운영 모습] 사내 뉴스레터 팅커벨
[CI 운영 모습] 심볼 형태를 적용한 캐릭터(팅커벨)
‘브랜드 디자인’이란 대체 뭘까요? 이 일을 하면서 저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는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그냥 예쁘면 되는 거 아니야? 무슨 고민이 그렇게 필요해?’ 라고 물을 수도 있어요. 물론 아무리 세밀한 브랜드 공식과 단계를 거치며 고민해도, 결과물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의미가 없겠죠.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에 ‘그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모든 브랜딩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근거들은 기업 혹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하게 다듬기 위한 요소이고, 이를 바탕으로 탄탄한 로직을 세워야만 브랜드의 시각적 운영이 가능해지게 되는 겁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지금도 CI를 리뉴얼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보는 건 완성된 CI 하나지만 이번 글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디자인’, ‘로고’라는 표면 아래에는 치열한 토론과 고민이 있답니다. 브랜딩이란 작은 변화에도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감도와 강도 높은 작업이에요.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제가 해 온 고민들을 길게 적어 봤습니다. 듣지 않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사실 이번 리뉴얼은 일정상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어요. 보통은 연간 계획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보름 정도만에 빠르게 완료해야 했거든요. 밀당PT의 BI와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CI를 리뉴얼하면서 ‘내가 스타트업에 있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언젠가는 밀당PT, 스쿨PT BI 리뉴얼 스토리를 따로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빠른 일정 속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있기에 핵심적인 부분을 꼭 염두에 두면서 최선을 다해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슬쩍 보고 지나치던 CI가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이실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이야기에서 들려드린 것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노력과 고민으로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저희 팀에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채용 중인 공고를 살펴 보셔도 좋아요. 더 자세한 브랜딩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저를 찾아주세요. 오피스 곳곳의 브랜딩 요소를 소개해드릴 수도 있어요. 그럼 여의도 오피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