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좋아합니다. 같은 이야기여도 맥락을 알면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주인공이 왜 저런 제스쳐를 보였을까, 이 음악은 왜 이 시점에 나오는 걸까’하며 혼자 고민합니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향해 맥락에 미친 사람이라 부르기도 해요.
게다가 조직문화 콘텐츠를 맡고 있다 보니 회사 곳곳에 ‘조직문화적 맥락’을 두는 것도 좋아합니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한바탕 보물찾기를 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요. 마침 오피스도 멋진 곳으로 이사했겠다, 다음 주에 합류할 팀원분들의 첫 오피스 투어를 준비하며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오피스엔 어떤 맥락이 숨어 있을까요. 다 알려주면 나중에 시시할 테니 딱 세 가지만 말할게요.
문구 용품은 자율적으로, 밀당 스퀘어
“어? 서류봉투가 어딨더라?”
누구나 겪을 만한 순간입니다. 테이프, 문구용 칼, 딱풀 등등. 고개만 돌리면 보이던 것들이 꼭 찾을 때만, 그리고 바쁠 때만 보이지 않아 애간장을 태웁니다. 미칠 노릇이에요. 어딨는지도 모르니 우선 비밀의 방 같은 경영지원 부서에 찾아가 목을 빼꼼 내밀고 말합니다. “저기, 혹시… 서류봉투… 있을까요?”
서류봉투를 찾기까지 10초 정도가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만약 회사에 합류한 100명의 팀원 모두 서류봉투를 찾기까지 같은 과정을 겪었다고 상상하면 이야기는 꽤 심각해 집니다. 회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서류봉투 하나 찾느라 1,000초의 시간을 날린 셈이 되거든요. 분 단위로 바꾸면 무려 16분입니다.
밀당 스퀘어는 팀원들의 5초, 10초를 아껴주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다른 회사에선 O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뉴욕의 타임즈 스퀘어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정말 없는 게 없는 거리잖아요. 여의도에도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공간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곳엔 포스트잇, 연필, 볼펜, 형광펜, 물티슈 등등 회사 업무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문구용품이 있습니다. 팀원은 “어? 그거 어딨지?” 하는 순간 밀당 스퀘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거고요.
이제는 터놓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밀당 스퀘어를 기획할 때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누군가 집에 왕창 가져가면 어떡할까’ 혼자서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나요. 다행히 팀원분들이 필요할 때마다 밀당 스퀘어를 이용해 주시는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운영되고 있는 오피스의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놀랍게도 운영 예산이 기적적으로 뛰지도 않았고요.
날벌레 이름으로 가득한 회의실
모스키토, 크리켓, 맨티스… 곤충이 싫다면 생각만 해도 눈이 질끈 감기는 이름들입니다. 심지어 우리 오피스의 회의실 이름인데요. 조직문화 담당자들이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라는 회사 이름에 과하게 집중한 탓에 오히려 컨셉에 잠식되어 버린 건 아닌지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한 달 전만 해도 피플팀(현 EX팀)의 명성 님과 저는 새 오피스의 도면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수십 개의 회의실 이름을 새로 지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 오피스의 회의실 이름 중 하나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란 걸 알게 됐는데요. 세계적으로 다신 겪기 싫은 불행한 사건들을 이름으로 정해 회의를 빨리 끝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해요. 명성 님과 저도 여기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Flying Bug 하나하나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뜻을 정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날벌레들을 생각해 보세요. 눈이 질끈 감기고,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게다가 정말 싫어 하는 분들은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버거워 합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맞다. 그거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봐야지’하는 마음이 문제를 더욱 키우기 마련이잖아요. 지금 당장은 흐린 눈을 하고 싶고, 피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에 들어가 문제를 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지난 여름, 왼쪽 팔에 착 달라 붙어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던 ‘그 매미’가 문득 떠오릅니다. 아직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에요. 매미와 눈 마주치는 경험은 다신 하기 싫지만, 이번 주에 부딪쳐야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팀원들과 시케이더 회의실을 예약해 볼게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곳곳에 어떤 회의실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오피스에 놀러와도 좋고요.
빠르게 당 충전하는 스낵바
꽉꽉 채워져 있는 간식들.
당이 떨어졌다면 언제든 스낵바로 오세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팀원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바로 스낵바입니다. 다양한 간식을 편의점 가격보다 30~70%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는데요. 단돈 500원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스낵바도 팀원들의 시간을 아끼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일하다가 출출함을 느끼는 게 정상이지만 잠깐 사무실 밖으로 나가 편의점까지 갈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막상 나가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거의 뛰듯이 편의점을 다녀오게 되고요. 간식 사러 먼 길 떠나지 말고 단 몇 걸음으로 해결하시라고, 팀원들 모두 금방 오고 갈 수 있는 곳에 스낵바를 만들었습니다.
종종 슬랙에 올라오는 귀여운 양심 스레드들.
가격이 저렴한 스낵바에서 사재기를 하거나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그냥 가져가면 어떡하냐고요? 다행히 밀당 스퀘어처럼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가끔 결제가 안 될 땐 팀원들이 스스로 슬랙에 메시지를 남겨 주시고요. 팀원이 늘어날수록 스낵바에서 더 다양한 간식을 만나볼 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오피스 투어를 준비하며
이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게 많아요. 길을 쉽게 찾아주는 오피스 지도 PC 배경화면이나, 스낵바, 새로 준비하고 있는 미니 라운지 파브르(가명)까지. 모두 업무 몰입을 돕고,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는 훌륭한 도구들입니다. 이 글에선 맛보기(?)로 짧게 세 가지만 소개했는데요, 왠지 더 듣고 싶지 않나요? 기획자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느낌도 들고요. 의도를 알고 싶은 그 마음, 우리가 쓰는 공간에 맥락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회사 곳곳에 맥락이 없다면 ‘밀당 스퀘어의 수많은 문구용품들은 공짜! 회의실 이름은 그저 재밌으려고 만든 거!’ 정도로 치부되었겠지요. 맥락을 알고 나니 의도가 보이고, 의도가 보이니 목적에 맞게 쓸 수 있게 됩니다. 공간 곳곳이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잘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팀원들과 맥락을 나눈 덕분이었다고 확신해요. 그래서 그동안 코로나19로 하지 못했던 오피스 투어를 준비하는 데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요.
우리 팀이 오피스 투어를 어떻게 꾸려 나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조직문화 담당자들과 함께 한 바퀴 걷고 나면 공간이 분명 새롭게 보일 거예요. 저 역시 앞으로 합류할 팀원과 우리 회사의 맥락을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에버랜드 소울리스좌처럼 “One Two Amazon”하지는 않더라도 선물 같은 시간을 주도록 열심히 준비해 볼게요.